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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많은 사람이면 한번쯤 봐보라고 인터넷에서 글 봐서 언젠가 봐야지… 하고 있던 거였는데
마침 뭔가 오늘 딱 보면 되겠다 싶어서 시청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에 관련된 영화라는 사전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가서 이해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모르고 봤더라도 그냥 화면에서 대놓고 보여줌
프라이드 플래그를 연상케하는 돔 속에서 혼자 방황하는 주인공으로 영화가 시작하는데 여기서 아 이게 메인 주제구나 ㅇㅋ 하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세상은 나뉘는 거겠지…

나 자신은 그렇게까지 소수자는 아니다
걍 태어난 대로 살아오고 있고 의문? 은 종종 가져보긴 했는데 내 정체성과 지향성이 그렇게까지 내 삶에서 많은 걸 차지하고/영향을 끼치고 그러지는 않아서…
근데 소수자가 아니라고/당사자성이 없다고 해서 관련 주제를 이해를 못할 수는 없다고 생각함
디스포리아가 난 뭔지 모르겠지
앞으로도 알 일은 되게 희박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걸 실제로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고민을 모를 수는 없겠지
정녕 모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모르기 위해 힘내는’ 나쁜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 중
나는 내 주변인들과 그 주변인들의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존중받는 삶을 살았으면 해서…

아무튼간에 다시 감상 얘기나 해보자면
좀 잔잔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틀었고 실제로도 전반부는 좀 잔잔하게 흘러감
나 도파민 중독이라갖고 그래서 도파민 구간 언제 나오지 하고 있었음 (저기요)

근데 보면 볼수록 소품이나 화면 색감이나 조명 등 컬러가 엄청 확고하니까 계속 색깔 찾아보게 되더라
일단 애초에 작품 핵심 소재중 하나 이름이 핑크 오페이크고 이게 처음 제시되면서 등장인물들이 첫 만남을 가지는 샷에 대놓고 확튀는 핑크 자판기까지 놓아줘갖고 잘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음
자 여기 핑크입니다!! 여러분 색깔이 중요한 거 같죠?? 색깔 잘 봐보면서 영화 관람하시길!! 하고 다 알려줌

그리고 이 핑크가 주인공이 정체화하려는 (이게 맞는 표현인가?) 성별을 나타냄과 동시에 돌아가야할 (돌아가다?) 비현실도 상징하고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의미를 겹쳐서 보게 되는 게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재밌었다? 재미인가? 일단은 재미가 있었다는 표현으로 하자

핑크라는 색상이 굉장히 튀는 탓도 있지만
그와 대비되는 녹색/파랑이 주인공이 살고 있는 현실/지정된 성별을 뜻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핑크색 창문과 파란색 창문을 양쪽에 두고 그 사이를 평행으로 걸어가는 주인공 < 이거는 진짜 너무나도 뚜렷한 암시…
빨강… 빨강은 걍 위험한 거 (ㅈㅅ)

색깔도 그렇고
극중극을 보여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화면비 연출이라든가
인위적으로 넣은듯한 CG의 괴리감
화면 너머 관객을 인식하는 듯한 나래이션과 인물들의 정면샷 등등…
비디오/TV를 중심 소재로 잡은 만큼 그 요소들을 활용한 연출들도 재밌었음

그리고 정체화를 이야기 하면서 거기에 어느 쪽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아리까리 하게 하는 (이런 거를 뭐라고 하지? 잘 모름) 호러? 소름? 스릴러까진 아닌 것 같고 아무튼 그런 흐름까지 잘 섞어줬어서 재밌었다고 생각함 나는 이 부분에서 재미 (흥미?) 를 더 많이 느꼈음

우리가 사실 드라마 속의 인물이었다면서 누가 진지하게 얘기해오면 이 얘기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거를 너무 드라마=비현실=허구로 완전히 일치시켜버리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를 너무 무시해버리는 것이겠지만)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저 사람이 미친 건지의 그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함과 불안감이 나는 재밌었음
후반부로 갈수록 그게 심해져서 난 그게 또 재밌었음

나는 뭐랄까 종종… 이 세상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고 느껴서
세상과 내가 약간 분리된 느낌?
이런 거를 뭔가 이인증이라고 하던데 난 전문의를 만나지 않은 사람이니까 나 스스로 진단 내리는 거는 위험하고
약간의 그런 성향이 있다고는 생각이 들긴 함

아무튼… 그런 점에 있어서 세상과 자신의 괴리를 느끼는 것 같은 부분을 재밌게 봤음
그냥 내 마음 좀 이입 잘 되면 다 재밌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정말로 다들 한번쯤은 그런 생각 안 해보나
사실… 이 세계는 가짜야… 나는 약간 잘못 섞인 존재고
생각 안 해봤다고? 잘 살고 계시는군
하지만 한번쯤은 의심해봄직하지 않나
모든 것들을 어디까지 신뢰할 셈이지

그래서 난 극후반부가 몰입이 잘 됐음
그리고 너무 안타까웠다고 해야 하나
근데 또 인터넷 살짝 보니까 엔딩 직전부분을 오히려 긍정적인 장면이라고 해석한 사람도 있어서 오오 그렇군… 했음
그에게는 불행하지만 다행이게도 아직 시간이 있다 (정체화 면에서든 생존의 면에서든) 라고 보는 시선이었는데
이런 해석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슬픈 것 같긴 해
그렇지만 동시에 자신을 조금 더 알았으니 다행이지

그러면 자기에 대해서 고민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재미 없다고 느꼈을라나
약간 그럴 것 같기도…
물론 재미의 유무와 개인의 지향성은 반드시 일치하진 않지만

인터넷 보니까 호러 영화라고 생각해서 봤던 사람들은 다 재미가 없다고 하는 것 같았음
확실히 무서운 영화냐? 라고 묻는다면 그닥?
드라마 속의 특수분장이 불쾌한 골짜기 느낌으로 무서움 축에 들 수는 있어도

전체 흐름은 그냥 주인공이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옆에서 무슨 누나가 자꾸 이상한 소리함 < 정도로 압축할 순 있겠음
근데 이런 식의 요약은 너무 영화의 의도나 메시지를 무시한 거고
좀 좋지는 않은 시선이라고 생각함

모든 미디어들은 결국 보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이 중 100% 정답은 없는 것이 당연하다곤 생각하지만
세상에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있는 것처럼
제작 의도를 깡그리 무시한 해석은 얼마나 존중 받아야 하는가 싶음

이거는 뭐랄까 약간…
작품을 ‘보고’ 판단과 감상을 내놔야지
작품에게 뒤돌아서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해가 안 된다라는 식의 해석은 해석으로 취급해야 하는 그런 느낌…?
물론 모든 사람이 작품의 모든 메시지를 읽어낼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만든 이가 의도하지 않은 해석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근데 마지막 장면은 정말 나에게는 압도적으로 다가왔음
생일파티 (ㅋㅋ) 를 하고 나 빼고 다른 사람들 생일 축하로 깔깔 웃는데 이거 안 끝남
도망칠 수가 없고 소리 지르고 싶고
심리적 압박이 느껴져서 무서웠음
나도 어느 날 갑자기 파란 주스 토하는 거 아냐? ㅋㅋ
(혹시나: 나는 모든 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정말로 내 진짜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걸 현실의 내가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냐고 한다면 NO에 가까움)

어쨌거나…
나같은 사람들 (ㅋㅋㅋㅋㅋ)은 한번쯤 보면 잘 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였음
반대로 말하면 정말로 공포 영화 보러 온 사람에게는 노잼이겠다 싶었음
근데 애초에 여기서의 공포는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단인 거지 메인 디쉬가 아님

아 그리고
LG TV는 이거는 진짜 엄청 노골적인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사람들이 정말로 LG의 협찬을 받아서 화면 밑에 겁나 잘 찍히게 LG TV 로고를 갖다놨을까요?
아니지요~? 이거는 이제 얘들아 진짜 마지막으로 이해할 타이밍 준다 하고 이 영화 LGBT라고 대놓고 써주신 거죠?
그래서 이거 스포 없이 요약하려면 엘지티비 라는 말 밖에 안 나옴

근데 정말 뭐랄까…
사람들이 왜 픽션을 찾는지 알 것 같음
그걸 본다고 해서 내 현실이 바뀌진 않아
그렇지만 나 대신 나의 생각이나 마음을 누군가가 대신 표현해주고 있음을 보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